저는 지방에 있는 작은 도시에서 왔습니다. 제 고향에서는 학교 엄마들이 두루두루 다 잘 어울리면서, 누가 돈이 많은지 아닌지 상관없고 만나게 되면 늘 반갑게 서로 인사를 해요. 갈등이나 별문제 없이 엄마들끼리 사이도 좋았습니다. 일 년 전에 서울로 이사 오게 됐어요. 코로나 때문에 원격 수업을 오래 했다 보니 다른 엄마와 소통 방법은 카톡 단체방 밖에 없었어요. 프사를 봐야 엄마 이름이랑 아이 이름을 알 수 있었죠. 지금은 코로나 다 풀려서, 정상 수업하니까 가끔 아이를 등하교 시킬 때 다른 엄마들도 마주치죠. 톡 방에서 친절했던 어떤 엄마는, 막상 얼굴 볼 때 그냥 간단한 대화만 하고 미리 인사하지 않고 갑자기 가버렸고요. 다른 어떤 엄마는 제가 프사를 보고, 이 엄마가 우리 딸 단짝 친구 엄마임을 제가 알아채서, 막상 만날 때 제가 바로 "oo 엄마 맞으시죠? 저는 xx 엄마입니다~" 했더니 살짝 미소만 보이고 그냥 아이를 쫓아가는 척 쓱 가버렸어요.
매번 이런 일이 생길 때, 제가 너무 소심한 건가 생각이 들어요. 제가 너무 오지랖인가요? 외모가 별로라서 그런 건지, 안 꾸며서 다녀서 그런 건지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화장을 안 하지만 신경 써서 옷을 입는 것 같긴 해요. 혹시나 경제적 배경을 따지는 건지도 궁금합니다. 저희 집은 평범하게 살지만 없이 살 정도는 아니긴 합니다. 내가 하는 대화가 지루한 걸까? 곱씹어 보기도 합니다. 톡 방에서 다 친절해 보였던 분들이 왜 막상 만날 때 차가운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의 단짝 친구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왜 궁금해하지 않을까요? 워낙 소심하고 내성적인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학부모 학교생활 이렇게 복잡한 건가요? 조언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아이 친구 부모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데 생각했던 것과 달라 의아한 기분이시군요. 현 상황은 여러 가지 이유가 겹쳐져서 나는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들을 분리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이사 온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살던 지역과 전혀 다른 분위기인 이곳이 아직까지 익숙하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이 변화된 환경에서 적응하며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되지요. 두 번째, 온라인에서는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었어도 오프라인으로 갑자기 만나게 되면 어색함을 느껴 간단한 소통으로 넘어가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 아무래도 도시 지역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더 다채롭게 섞여 있겠지요. 어떤 사람은 아이 친구 부모와 온라인 소통이면 충분하다 생각할 수도 있고 - 밖에서 만나면 아는 척 정도면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는 경우, 개인 일정으로 할 말만 하고 빠르게 헤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오프라인에서 친해지기까지는 시간 및 좀 더 교집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도 있을 것입니다.
즉, 내가 과거의 경험으로 형성한 '생각' - 아이 친구 부모와는 두루두루 여러 대화를 하며 친하게 지내는 것이 자연스럽다 - 와 반대되는 생각의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다른 뉘앙스의 생각을 가진 부모들이 있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을 이해하면 나 자신에게 부족함을 찾지 않게 됩니다. 만약 특정 친구 부모가 내가 입은 옷차림, 경제적 상황을 기준으로 대화를 더 나누어야 할지 자리를 피해야 할지 결정하는 부류의 사람이라면 나는 나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그 부모와는 친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친구 부모들에게 웃음을 머금고 인사를 나누고, 진심 어린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나의 가치관에 맞는 사람만 깊게 친해지면 됩니다. 나머지는 상황에 맞게 적당한 수준의 대화만 나누면 충분할 것입니다. 최근 만난 부모들 중에는 이런 사람이 우선 보이지 않는다면, 아이가 학년이 바뀌며 다양한 친구 학부모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언젠가는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나와 맞는 사람도 있고, 맞지 않는 사람도 있지요. 예전 살던 곳은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좀 더 다양한 가치를 가진 여러 사람이 있음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춤형으로 대응하면 될 것입니다.
나의 성격을 꼭 '소심하고 내성적'으로 단정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먼저 인사를 걸 줄 아는 사람이고, 주변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잃지 않고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 - 내 가족과 그리고 이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을 만나며 새로운 지역에서의 교류를 천천히 넓혀나가면 됩니다. 시간이 이 이질적인 느낌을 해결해 줄 것입니다.
우리 아이는 엄마의 이러한 모습과 가치관을 옆에서 보고 있음을 기억하세요.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주체성을 가지고 현명하게 헤쳐나가는 엄마의 모습은 아이에게 중요한 귀감이 되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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