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명 글 — 남편 이야기
제목: 아무리 해도 아내 기준엔 늘 부족한 것 같다
솔직히 왜 이 글을 쓰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어디라도 털어놓고 싶어서인 것 같다.
우리에겐 어린 아이가 있다. 아내는 집에서 아이를 보고, 나는 풀타임으로 일한다. 퇴근하면 나도 피곤하다. 그래도 아무 것도 안 하진 않는다. 아이 재우는 것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버린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아버지보다 훨씬 많이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뭘 해도 전부 틀린 것 같다. 5분만 앉아 있으면—한숨. “내가 뭘 할까?”라고 물으면—“왜 그걸 내가 말해야 해? 하... 알아서 좀 해!”
말 안 하고 알아서 하면—“아니,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오늘은 진짜 터졌다. 야근하고 집에 왔다. 회의는 늘어지고, 차는 막히고. 문 열자마자 집은 난장판. 장난감은 바닥에 다 흩어져 있고, 아이는 자다가 깼는지 울고 있고, 아내 얼굴은… 말 그대로 탈진 상태였다.
그래서 그냥 물었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그러자 바로 날아온 말.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르잖아. 너 여기 없었잖아.”
아… 생각보다 훨씬 아팠다. 나도 이 집 구성원이다. 나도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보이지 않는 시험에서 계속 떨어지는 기분이다.
요즘은 내가 남편이라기보다 아내를 실망시키는 또 하나의 존재 같을 때가 있다.
난 아내와 아이를 사랑한다. 정말로.
그런데 요즘 집에 들어가는 느낌이 이미 혼나 있는 상태로 출근(?)하는 기분이다. 때론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르겠는데 말이다.
👩💻 익명 글 — 아내 이야기
제목: 남편이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나를 좀 봐줬으면 좋겠다
아이가 겨우 잠든 뒤에 이 글을 쓴다. 지금 밤 11시다. 오늘 한 번도 제대로 앉아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말한다.
“그래도 남편이 잘 도와주는 편이잖아.” …이 말 들을 때마다 속에서 뭔가 올라온다. 왜냐면 그 우리집 실제 상황을 아무도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내 머릿속엔 이런 생각들이 자동 재생된다.
- 다음 아이 밥 반찬 언제하지
- 낮잠 타이밍 놓치면 오늘 망하는데
- 그 양말 어디 갔지
- 이 울음, 평소랑 다른데?
남편이 집에 올 즈음이면 내 뇌는 이미 꺼지기 직전이다. 오늘도 그랬다. 늦게 들어온 남편이 물었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그 순간, 안에서 뭔가 뚝 부러졌다. 여보세요. 무슨 일이 있었냐고요? 저기요? 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 아침 9시 대폭발한 떼쓰기.
- 아이의 저녁밥 거부
- 또 깜빡하고 세탁기에 그대로 놔둔 빨래.
- 그리고… 오늘도 혼자 고요하게 화장실 한 번 제대로 못 갔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리고 나의 허기진 배.
그래서 그 질문은 이렇게 들렸다. “자자, 네가 얼마나 힘든지 나한테 설명해 봐.”
나도 안다. 내가 날카로웠다는 거. “넌 몰라. 여기 없었잖아.”라고 앙칼지게 말한 거. 남편 얼굴이 굳는 걸 봤다. 바로 죄책감도 들었다. 하지만 너무 지쳤다. 내 피곤함을 말로 번역하는 것조차 버겁다. 도움을 ‘부탁’처럼 해야 하는 것도 너무 지쳤다.
난 대단한 남편 영웅이 필요하지 않다. 칭찬도 필요 없다. 무너지기 전에 제발 좀 먼저 알아봐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애는 나 혼자의 책임이 아니다. 그런데 때론 남편은... 바로 옆에 있어도 나와 아이는 투명 인간 같다.
그 남자 그 여자 이야기 살펴보기 : 그날 밤, 두 사람의 뇌는 지쳐 있었습니다.
그날 밤, 그 집에서는 누가 대단한 잘못을 한 게 아닙니다. 다만 두 사람의 뇌가 모두 너무 지쳐 있었을 뿐이지요.
결정을 너무 많이 내려서 지친 뇌, 감정을 너무 오래 버텨서 마른 뇌, 하루 종일 꺼지지 않은 채 켜져 있던 뇌의 피로.
아내가 날카롭게 반응했을 때, 그건 남편을 공격하려는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뇌는 그저 자기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하루 종일 그녀의 뇌는 경계 상태였기 때문이지요.
울음소리에 반응하고, 시간을 계산하고, 아직 오지 않은 문제를 미리 예측하느라 쉼이 없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뇌는 설명하는 걸 포기합니다.
대신, 반사적으로 반응합니다. 그래서 “오늘 무슨 일 있었어?”라는 말이 남편의 순수한 호기심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그 말은 이렇게 들립니다. “네가 얼마나 힘든지, 나에게 증명해봐.”
한편 남편의 뇌는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뇌는 처음에는 순수하게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곧 말의 타격에 혼란스러웠고, 상처받아 무너진 것이지요.
그는 사랑하는 가족과 연결되기를 바라며 집에 들어왔었고, 작은 전쟁터였던 외부 상황에서 빠져나와 사랑하는 내 가족과 같은 편이 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를 맞은 건 냉랭한 공기와 날 선 문장이었지요. 뇌는 그걸 자신에 대한 거절로 받아들입니다.
이 지점에서 대부분의 부부가 놓치는 사실이 있습니다.
스트레스에 잠긴 뇌는 자기에게 없는 것을 줄 수 없습니다. 아내의 뇌엔 설명할 단어가 남아 있지 않았고, 남편의 뇌엔 섬세하게 공감하며 위로할 여유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서 있으면서도 각자 혼자였던 것이지요. 이런 싸움이 유난히 크고 아픈 이유는 생각하는 뇌는 이미 꺼져 있고, 각자 살아남으려는 뇌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일부러 상처 주려 한 게 아닙니다. 각자의 신경계가 “나는 지금은 버텨야 한다. 나 정말 힘들다”라고 외치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 상태에서 싸우는 건 관계가 망가지고 각자의 상처만 더 깊어집니다.
그리고 중요한 한가지 사실,
둘 사이에 사랑이 없는 게 아니라, 너무 지쳐 (서로의) 사랑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느낌, 사랑을 받는 느낌은 각자가 나는 이제 안전하다고 느낄 때 돌아오기 때문이지요. 자신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면 (방전된 뇌, 상처받은 뇌) 사랑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핵심은, 서로를 고쳐야 한다가 아닙니다. 상대방을 설득하라라는 것도 아닙니다.
두 사람의 뇌가 동시에 바닥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 위에서 더 큰 상처가 쌓이기 전에 관계를 위해, 나를 위해 잠시 멈추자는 이야기이지요.
그날 밤, 딱 하나씩만 했더라면
그녀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내 상태를 인지하고 그 상태를 딱 한 두마디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말이 안 나와. 완전히 지쳤어.”
문제 설명 없이, 변명 없이, 그저 지금의 상태만. 상대방이 모를 수도 있으니까. 앙칼진 말을 심호흡으로 흘려보내고, 내 상태를 한 문장으로 말하기. 그 한 문장은 싸움을 시작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지키는 신호가 됩니다.
남편에게 해야 할 건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역할은 상대방에 대한 질문이나 요청보다는, 내가 우리 가족과 여기 같이 있다는 존재감을 쌓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질문 대신 가족에게 필요한 작은 행동을 하기.
- 울고 있는 아이를 안거나,
- 말없이 집안을 정리하거나,
- 딱 한 두 문장만 말하는 것 “설거는 내가 할께” "오늘 고생 많았어"
말보다 행동이 먼저일 때, 나의 뇌와 상대방의 뇌는 다시 안전을 느낍니다.
둘이 함께 쓸 수 있는 짧은 문장 하나
이건 손상을 막는 문장입니다.
“지금은 우리 둘 다 괜찮지 않은 것 같아. 잠깐 멈추자. (이 관계부터 지키자.)”
결국에는 누가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관계를 보존하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입니다. 관계를 지켜야 우리 가족의 그리고 나의 삶이 돌아갑니다.
누가 이기고 지는 싸움은 서로에게 손해입니다. 핵심은 그저 나쁜 타이밍에 가장 지친 두 개의 뇌가 만난 것이지요.
그래서 필요한 건 각자의 에너지를 회복하고, 말이 날카로워지기 전 잠깐의 멈춤을 만들어야 합니다.
관계를 도와주는 아주 작은 습관
그날 아이를 재운 후 서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연결되기 위해 이 질문을 한번 해보는 게 어떨까요?
“오늘 당신은 가장 힘든 게 무엇이었어?"
해결하려 들지 말고, 조언하지도 말고, 그냥 듣기만 하면 됩니다. 너도 정말 힘들었구나.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작은 이해가 서로에 대한 연결을 다시 구축합니다.
대부분의 부부 싸움의 원인은, '서로가 각자의 신경계가 한계에 닿았고, 그래서 나 좀 도와줘'입니다. 공격이 아닌, 함께 속도를 줄여야 할 신호입니다. 말보다는 행동을, 그리고 각자의 휴식을. 싸움은 휴식에 완벽히 역행하는 것이지요. 휴식이 필요한 내 신경계에 불을 지피는 일입니다. 나의 뇌와 상대방의 뇌도 방전되어 보이면 그래, 그렇구나 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필요합니다. 그 노력들은 사회적 동물로서 혼자서 살 수 없는 나를 위함입니다.




